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그 안에 담긴 예술과 신성의 깊이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여행기 마지막 편에서는 바티칸 박물관, 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대성당을 중심으로 고대 로마 문명의 연장선이자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 된 이 특별한 장소에서 신과 인간, 예술과 믿음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를 천천히 살펴본다.
바티칸 박물관 – 신과 예술이 공존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은 예술의 거대한 성소다. 약 500여 년의 수집 역사를 지닌 이 박물관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조각상부터 이집트 유물, 르네상스 회화, 현대 미술까지 전 세계 다양한 예술 유산이 총망라되어 있다. 54개의 갤러리, 총 7km에 이르는 관람 동선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닌 하나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이다.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천장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천장의 아담과 신의 손끝이 마주치는 장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꼽힌다.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몸을 통해 신의 창조와 위엄을 표현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종교적 감동을 넘어선 예술적 경외심을 자아내게 한다.
또 다른 주요 공간은 라파엘로의 방(Stanze di Raffaello)이다. 르네상스의 천재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한 공간에서 토론하는 장면을 통해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사상의 융합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이 한 공간에 등장하고, 당시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를 플라톤의 얼굴로 묘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 외에도 지도 갤러리, 타피스트리 갤러리, 이집트 박물관, 에트루리아관 등은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의 예술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시공간 여행을 제공한다. 바티칸 박물관은 단순한 미술 전시 공간을 넘어서, 인류의 정신과 감성이 쌓아올린 지적·영적 유산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베드로 광장 – 신의 품에 안긴 인류를 위한 열린 성소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펼쳐진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광장 중 하나다. 바티칸의 공식 출입구이자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이는 이 장소는 단순한 넓은 공간이 아닌, 기하학적 구조와 상징이 집약된 작품이다. 베르니니가 17세기에 설계한 이 광장은 284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마치 두 팔을 벌려 인류를 감싸 안는 듯한 형상을 이룬다. 이는 ‘신의 품에 안긴 인류’를 의미한다.
광장 중심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옮겨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기원전 약 13세기경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 제국이 고대 문명을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기독교와 고대 신앙이 교차하는 물리적 상징이다. 주변 바닥에는 세계 각국의 방향과 거리가 새겨져 있어, 베드로 광장이 단지 바티칸의 중심이 아닌, 전 세계 신자의 정신적 좌표임을 나타낸다.
매주 수요일이면 교황의 일반 알현이 열리며,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이 광장을 가득 메운다. 이 순간 광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믿음과 희망이 물결치는 축복의 장소로 변한다. 또한 건축적으로는 이곳에서 대성당 정면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어, 수많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남기는 명소이기도 하다.
성 베드로 대성당 –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신의 집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은 전 세계 가톨릭의 심장이라 불리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으며, 그 자체로 기독교 건축의 결정체이자 르네상스 예술의 총집합이다. 현재의 성당은 16세기부터 1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지어졌고,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건축과 조각에 참여했다.
성당의 내부는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입장 순간부터 그 웅장함과 정교함에 압도된다. 입구 오른편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à)’가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감정의 깊이와 조형미에서 인간의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로 평가된다.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건함과 경외심이 가슴 깊이 전해진다.
대성당 중앙 제단 위에는 베르니니의 ‘발다키노’가 위치해 있다. 29m에 달하는 청동 구조물은 실내 조각 중 세계에서 가장 크며, 제단의 신성함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시각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제단 아래에는 사도 베드로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 이곳에서의 미사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으며, 성당의 정점이자 로마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약 500여 계단을 올라 돔 꼭대기에 도달하면 로마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단순한 도시 조망을 넘어, 신성과 인간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동을 선사한다.
고대에서 신성으로, 로마라는 시간의 마지막 문을 열다
바티칸은 로마라는 도시의 역사적, 정신적 흐름이 집결된 마지막 지점이자, 새로운 시작의 문이다. 고대 로마의 정복과 문화, 예술이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신성한 공간에서 다시 태어난 바티칸은 단순한 종교적 성지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흐름이 응축된 장소다.
바티칸 박물관의 예술, 베드로 광장의 상징성,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과 영성은 모두 신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다. 로마 여행의 끝은 곧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왜 역사를 기억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바티칸은 조용히 예술과 신앙으로 속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