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도시 전체가 과거 위에 세워진 거대한 박물관이다. 그중에서도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을 중심으로 한 구역은 고대 로마 문명의 핵심이자, 제국의 심장부였다. 이 여행기 1편에서는 로마 제국의 정치·종교·엔터테인먼트 중심지였던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그리고 키르쿠스 막시무스와 비토리오 에마뉴엘 2세 기념관 등 역사의 주요 무대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고대 문명의 흔적을 오늘의 발걸음 위에 되새겨본다.
콜로세움 – 로마 제국의 힘과 대중의 열광이 살아 숨 쉬는 곳

고대 로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콜로세움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제국의 권력 구조와 시민 통제의 수단, 건축 기술의 정점이 모두 집약된 공간이다. 서기 80년에 티투스 황제에 의해 개장된 이 원형 경기장은 약 5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고, 검투사 경기, 동물 사냥, 인공 수로를 이용한 해전 재현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이는 로마 시민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동시에, 황제의 관용과 지배를 시각적으로 과시하는 도구였다.
콜로세움 내부는 당시 건축 기술의 집합체라 할 만하다. 아치 구조로 이루어진 계단과 벽면, 입장객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번호가 새겨진 입구들, 지하에 마련된 승강기와 동물 우리 등은 현대 경기장의 전신이라 불릴 정도로 체계적이다. 또한 천장을 덮는 거대한 차양막, 벨라리움도 존재해 관객들에게 햇빛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다. 이 모든 장치는 단지 화려한 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열망과 황제의 정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시스템이었다.
오늘날 콜로세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장소다. 관람 시에는 로마 패스를 이용하거나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긴 줄을 피할 수 있다. 내부 투어나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하면 건축 방식, 검투사들의 삶, 황제의 정치 전략까지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로마 여행에서 콜로세움을 본다는 건 단순한 관광을 넘어, 로마 제국이 남긴 거대한 서사에 직접 발을 디딘다는 의미다.
포로 로마노와 베누스와 로마 신전 – 권력의 심장이자 신과 인간이 만나는 무대

콜로세움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고대 로마의 심장부였던 포로 로마노가 펼쳐진다. ‘포로’는 라틴어로 광장을 뜻하며, 이곳은 고대 로마 시민들의 삶이 실제로 진행되던 공공의 장이었다. 정치, 종교, 상업, 사법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수천 년 전의 거대한 제국이 숨 쉬던 중심지였다. 원로원이 모여 회의를 하던 쿠리아, 재판이 열리던 바실리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전, 황제의 개선 행렬이 지나던 길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역사적 중량감이 전해진다.
포로 로마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바로 베누스와 로마 신전이다. 이는 로마 제국의 위대함과 사랑의 여신을 상징하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신전 중 하나였다. 서기 13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축했으며, 베누스는 제국의 번영과 다산을, 로마 여신은 국가 그 자체를 의미한다. 두 여신을 동시에 기린 이 신전은 로마가 제국으로서 갖는 신성과 정치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신전의 열주와 섬세한 기둥, 웅장한 계단을 바라보면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로마 시민들에게 국가의 이상을 전달하고, 황제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어 당시의 규모와 예술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사진 명소로도 매우 인기가 높다. 포로 로마노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닌, 로마 제국의 역사적 시스템과 가치관을 몸소 체험하는 행위다.
캄피돌리오 광장과 비토리오 에마뉴엘 2세 기념관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대서사

캄피돌리오 언덕은 고대 로마 7언덕 중 하나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종교적 중심지였다. 현재 이곳에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고대와 르네상스, 현대의 미학이 공존하는 상징적 장소다. 광장 중앙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고, 좌우 대칭으로 설계된 건물들은 로마 시청과 카피톨리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의 육각형 포장과 완벽한 비례는 미켈란젤로의 건축적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고대 유산을 재해석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광장 뒤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마치 로마를 수호하듯 서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바로 비토리오 에마뉴엘 2세 기념관이다. 이탈리아 통일을 이루어낸 초대 국왕을 기리기 위해 1911년 완공된 이 기념관은,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형태 덕분에 ‘하얀 케이크’, ‘타자기’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그 별명 속에는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의 복잡한 감정도 내포되어 있다. 고대 유산 사이에 너무 거대하게 들어선 이 기념관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국가 통일과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기념관 내부에는 무명 용사의 묘가 위치해 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의 희생을 기리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로마 전경이 360도로 펼쳐지며, 콜로세움부터 바티칸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캄피돌리오 광장과 기념관은 고대와 근대, 역사와 현재가 맞닿는 거대한 교차점이자, 로마가 여전히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시간의 무게를 걷는 여행
로마는 ‘시간이 멈춘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가 현재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우리의 일상과 공존하는 곳이다. 콜로세움에서 들리는 옛 검투사의 함성, 포로 로마노에 남겨진 무너진 신전의 기둥, 캄피돌리오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경 속에는 고대 문명의 깊이와 지속성이 스며들어 있다.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들이 의미하는 가치와 권력, 시민의 삶을 상상하며 걸을 때 로마는 비로소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이번 1편에서는 로마 고대 유적의 핵심 구역을 중심으로, 각각의 장소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공간적 감동을 전하고자 했다. 다음 2편에서는 판테온, 진실의 입, 트레비 분수 등 로마의 신화와 일상이 만나는 또 다른 여행을 이어갈 예정이다.